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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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생물학자 최재천
생명을 사랑하는 인류 미래의 파수꾼
국립생태원장 최재천 원장
TV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서 학자들이 동물들을 연구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생물학자는 이처럼 동물이나 식물,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들이 빚어내는 현상에 대해 연구하는 일을 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자연에 대해 흥미가 있고 자연과 생명을 사랑할 줄 알아야한다. 특히 환경 분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생태환경을 보존하여 인류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소명감을 가져야 한다.
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생물학자(동물행동학자)란 직업은 어떤 직업인가요?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생물을 시험을 보기 위해 외우는 과목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원래 생물학이란 저 동물은 왜 저럴까?, 사람은 왜 이럴까? 등등 “왜?”라는 의문을 갖고 살아있는 자연과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생물학에는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 유전과 진화를 연구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그 중에서 나는 사회생물학자입니다. 사회생물학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사회적 행동에 관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동물의 행동이 진화과정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생물학자로서 이십여 년 간 열대지방을 다니며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고 생태환경 보존활동에도 관여해왔습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통섭’을 추구하고 있으며 ‘개미박사’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미시간대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있습니다. 2013년 말부터는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맡아 일반인에게 과학을 널리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개울물에서 첨벙거리며 물가의 작은 벌레나 물고기 등을 관찰하며 놀곤 했습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생명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담에 크면 시인이 될 줄 알았습니다. 생명의 모습을 깎아보고 싶어 조각가가 되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과학자가 되어 생명의 속살을 파헤쳐보고 싶었고 생명의 본질을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진로를 찾아보다가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 있던 김계중 교수와의 인연으로 조지 에드먼즈 교수의 조수가 되어 일주일 간 전국의 개울을 돌며 하루살이를 잡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고달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야외에 나가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 적성에 딱 맞았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유학을 결심하고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 학위,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생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요.
일을 하며 이 일을 하길 잘 했다 하는 때는 언제인가요?
어떤 때라기보다는 늘 직업을 참 잘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이런 직업이 없으니까요. 남들은 휴가를 얻어야 갈 수 있는 해외의 멋진 어느 곳을 나는 연구차 갑니다. 물론 돈은 많이 못 법니다. 생물학자로서 부유하게 산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죠. 그렇다고 해서 궁핍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 욕심만 없으면 천하에 최고 일입니다. 내가 만약 생물학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멋진 자연을 돌아다니면서 영특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었겠나 싶습니다.
일을 하며 가장 힘들고 지칠 때는 언제인가요?
예산을 따러 다닐 때가 제일 힘듭니다. 국민세금을 자연을 돌보는데 쓰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원하는 만큼 예산 따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연을 보존하는 일에 굉장히 노력을 했는데 결과가 실패했을 때도 지칩니다. 생물학자로서 환경운동을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이 사라져갈 때 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한쪽에서 아무리 자연을 보존하려고 애쓰고 있어도 끊임없는 경제개발로 야금야금 계속 조금씩 자연이 파괴되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 파괴될 것이고 기껏 해야 그것을 늦추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통섭이란 어떤 것인지 청소년 아이들 눈높이에서 쉽게 말씀해주세요.
예전에 우리 아버지들은 직업 하나를 가지고 일하다가 은퇴했습니다. 우리 윗세대는 60년 생애 중 기껏 25~30년 정도 일을 했기 때문에 한 직업, 한 직장에서 버틸 수 있었지만 앞으로의 세대는 100세 시대에 60년 정도를 일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60년을 한 직장에서 버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전처럼 한 우물을 파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다양한 문화를 섭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한 분야만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엮고 넘나들어야 합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등 서로 다른 학문을 연결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지요. 이렇게 지식을 서로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이 바로 통섭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너무 먼 옛날 분이지만 생물학자로서 찰스 다윈을 가장 존경합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위인보다 매력을 더 느끼는 이유는 그분이 인간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은 애초에 똑똑한 위인으로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데 찰스 다윈은 조금 다릅니다. 대기만성형이지요. 다윈은 50 이전엔 주목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이 50에서야 ‘종의 기원’을 썼습니다. 조금 늦었는데, 그런 면에서 오히려 공감이 됩니다. 다윈만큼 어마어마한 진리를 찾아낸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굉장히 힘든 환경에서도 산재되어있는 그 많은 것들을 보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이끌어 냈다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알면 사랑한다”를 좌우명으로 삼으신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어떤 사람을 미워하더라도 그 사람을 잘 알게 되면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나 이유를 이해하게 되니까 무조건 미워할 수는 없게 됩니다. 이해하게 되니 오히려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연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훼손하는 것이지 자연을 알게 되면 저절로 사랑하고 아끼게 됩니다. 절대로 헤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능력이나 자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생물학자가 되려면 생명의 신비에 대한 관심과 창조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력도 요구됩니다. 또한 분석력과 함께 전체를 보는 종합력이 필요합니다. 같은 과학 분야라고 해도 물리학이나 화학은 분석을 해서 작은 것을 들여다보면 되지만 생물학은 다릅니다. 세포 안을 들여다본 다음에는 세포를 묶어서 한 인간을 봐야 하고,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를 봐야 비로소 생물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분을 들여다 본 다음에 한 발짝 물러나 전체를 보면서 큰 그림을 연상할 줄 아는 친구들이 생물학에 어울립니다. 파고들기만 좋아하는 학생이라면 자기 자신이 생물학에 맞는 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어요. 그런 학생들은 생물학보다는 물리학이나 화학에 더 맞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요즘 강의를 하면 가끔 마지막 슬라이드에 김연아 선수라든가 반기문 사무총장 등 아이들이 다 알만한 유명한 분들 사진을 걸어놓고, 여지껏 살면서 자신이 굉장히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굶어죽은 사람을 본적이 없다는 문구를 내보냅니다.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 대충 하지 않겠지요. 좋아하는 일은 아주 열심히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일하면 반드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는 되고 언젠가 대박을 칠 수 있습니다. 아주 단순한 논리이지만 가장 정확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악착같이 찾기를 바랍니다. 그 일을 찾는 과정에서 누구의 달콤한 권유에도 넘어가면 안됩니다. 무조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성공하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생물학자
생물학자는 연구원이나 교수로서 자연과 생명에 대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뜻 깊은 직종이다.이들은 주로 정부기관, 정부출연연구소, 기업부설연구소, 관련제품 제조업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거나, 대학교수로서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기도 한다. 생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생물학과, 생물공학과, 생명과학과, 생명공학과, 유전공학과, 농업생명과학과, 의·약학계열 등 관련 학과의 석·박사학위가 필요하다. 대학의 관련 학과에서는 주로 자연과학과 관련한 기초지식을 쌓는 학과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학년이 되면서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에서 자신이 관심 있는 세부 전공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되고 연구원이 되면 보통 석사과정의 세부전공을 중심으로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학생 시절 다양한 연구에 참여하여 관련 논문을 저널에 제출하는 등 연구 경력을 쌓는 것이 필요하며, 연구보조원으로 일해보거나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시행하고 있는 현장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관련 기관의 입직 시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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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KFood외교관
우리의 한식을 세계인의 식탁에
윤상진(42세) | 창직 아이템 : K-Food 외교관
K-Food 외교관은 한식을 알리는 직업인가요?
이름 그대로 우리의 음식을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직업입니다. 전 대학에서 호텔요리를 전공했었고 계속 조리나 제과제빵관련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베트남 아내와 결혼 후 자연스럽게 다문화가족을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적응하면서 잘 생활하는데 음식이 아주 중요한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이 잘 안통하고, 생각이 달라도 같은 음식을 먹다보면 공감대도 형성되고 정도 들잖아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와 관심분야를 접목하여 생각해 낸 아이템입니다. 한국에 있는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에게 한식 요리법도 가르쳐주고, 이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한국요리를 알리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전에도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식 요리법 강좌 같은 것을 했었는데 좀 더 저만의 아이템으로 차별화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본인의 경험이 창직 아이템으로 발전한 경우네요.
네 그렇습니다. 전 제과제빵공장도 운영했었고, 요리 강좌도 운영했었고 음식과 관련한 여러 일을 했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창업에 줄곧 관심이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식당이나 외식업은 경쟁도 심하고, 차별화가 되지 않으면 문을 많이 닫는 업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다보니 쉽게 음식점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요리와 관련된 일을 좋아하고, 잘해서 계속 이분야 일을 했었지만 큰 만족감이 들지 않아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계속 질문하게 되더군요. 저의 경험과 관심을 녹여서 담되, 차별화된 것이 없을지 계속 고민을 하다가 창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창직관련된 세미나, 수업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서 참여했고 창직 아카데미에 참여해서도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다른 요리관련 직업과 차별화전략은 무엇인지요?
저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지금 방문요리쉐프과정도 따로 배우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에 출장요리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저는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가정에 방문하거나 교육강좌를 열어서 한국요리도 알리고, 또 음식과 관련한 한국의 문화도 함께 알리고 싶습니다. 설날에 먹는 흰떡국의 의미는 무엇인지, 지역별로 김치는 어떤 특색이 있는지 등 음식과 우리 문화를 함께 알리는 스토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점이 기존의 조리사 영역과 차별화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음식조리법을 알리고, 재료손질을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저는 음식과 문화를 함께 알리고 한국에 있는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더 잘 이해하고 빨리 적응하도록 돕고 싶습니다.앞으로의 포부는 무엇인지요?
요리 전공도 했었고 다양한 분야의 외식업에도 종사했었지만 계속 전문성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배우려 합니다. 사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K-Food 외교관이라는 창직 아이템이 당장은 수익창출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창직을 하신 분 가운데 모든 것이 쉬웠다는 분은 안 계시더군요. 창직특강이나 수업에서 여러 분을 만났는데 모두 고생하신 경험이 다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제과제빵분야에 취업하여 일을 하면서 다문화 가족이나 외국인을 위한 스토리가 결부된 요리 아이템을 개발하고 구체화하는 일을 병행하고자 합니다.창직을 고민중인 분들께 한마디 전하신다면?
저도 이제 시작단계여서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일을 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구체화하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창직계획서를 적으려하니 막막하더군요. 취업이나 창업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템 개발이 어려웠습니다. 창직하신 많은 분들을 만나뵈니 본인의 경험을 살려야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더욱이 중장년층은 기존의 경력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는 상당한 부담과 위험이 따른다는 말씀도 계셨습니다. 본인의 업무경험, 혹은 그동안 취미나 관심사로 접해 본 경험이 있는 것들을 창직아이템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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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청소년진로교육잡지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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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서울시교육청, 한국고용정보원과 함께 청소년진로월간잡지 MODU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MODU는 청소년 진로월간잡지로서 진로정보, 학습법, 멘토링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서울지역 314개 모든 고등학교를 포함하여 전국 700여 개 중고등학교(주로 고등학교)에 배포하고 있으며, 9월부터 본격적으로 서울시 중학교에도 배포할 계획입니다.
잡지 발간뿐 아니라 EBSi 듀냐페이퍼, 한국고용정보원 웹진 ‘커리어엔진’,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의 합격생 수기를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청소년에게 무료로 진로 및 교육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청소년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진로, 꿈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선배로서 응원하고, 멘토가 되어 줌으로써 대한민국을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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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접한 기사가 있습니다. ‘강남 학생의 꿈은 의사, 교수, 금융인, 강북 학생의 꿈은 교사와 회사원’이라는 기사로 부모님의 소득 수준에 따라 자녀의 진로 목표나 꿈까지도 달라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출신 지역과 출신 배경에 따라 꿈이 달라지는 현실이 안타까웠고, 진정으로 자신만의 진로를 찾지 못한 청소년이 가여웠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의 행복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MODU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진로/적성/꿈을 진단해 주고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설 기관들은 학생들에게 수십, 수백만 원의 수강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모든 학생이 평등하게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단순히 진로와 꿈에 대한 콘텐츠를 무료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이를 기업의 형태로 영속할 수 있도록 하나의 탄탄한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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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신, 기업들의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형태의 무가지 비즈니스는 이미 다년간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검증되었습니다. ‘FOCUS’, ‘메트로’, ‘대학내일’, ‘M25’와 같은 다양한 무가지들이 이미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검증받고 시장을 형성하며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구독료가 아니라 광고를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무가지 비즈니스 모델은 충분히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검증받았습니다.
MODU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가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사업의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또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광고할 유인이 있는 광고주로서 대학, 온오프라인 교육 회사, 참고서 및 문제집 출판사, 휴대전화와 PMP 등 전자기기, 패션업체 등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시장의 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청소년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청소년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진로 정보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니즈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창직에 도전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 솔직히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 자체가 스스로에게 큰 성장과 교훈을 줄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창직에 도전한다거나 혹은 취업을 하더라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잃을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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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고 관련해서 마케팅과 전략 등을 재미있게 공부했었습니다. 그런데 MODU는 청소년 진로잡지이자 동시에 교육 콘텐츠 개발을 목표로 하는 회사입니다. 사범대나 교육학과 전공생들이 가장 관련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창직하는 과정과 운영 자체가 경영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었으며 사업계획서 작성 등에서 전공 지식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잡지, 그리고 교육 콘텐츠라는 부분에서도 비록 제가 언론정보학과나 교육학과가 아니었지만 해당 전공 출신의 친구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며 공부하고, 또한 그 친구들을 파트너로서 함께 일하면서 보완이 가능하였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창직 후 몇 개월이 지나면서 초기에 생각했던 것만큼 성과가 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예상과 다른 부분들이 많이 발생하였을 때입니다. 대부분 사업계획서의 예측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서 막상 현실로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면 불안감과 동시에 향후에 대한 걱정을 하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초기 예측과는 달리 회사의 성장 속도가 다르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있는 것에 힘들기도 했었습니다.
- 그러한 난관, 고비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가장 힘들 때 마다 버팀목이 되어 준 건‘ 꿈’과‘ 사람’입니다. 저희는 전국 모든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는 확고한 목표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다시 그 목표를 되새기며 열심히 업무에 복귀했지요. 그리고 슬럼프가 있을 때마다, 고비가 올 때마다 저를 붙잡아 준 것은 저희 잡지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청소년 독자들과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입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창직을 하고 대표가 되어 회사를 이끌어 가더라도,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은 사항이 있다면?
- 저희는 사회적기업진흥원과 경기복지재단(사회적기업경기재단)에서 주관하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약 1년간 멘토링, 컨설팅 및 사업자금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자본금 일부를 융자받았으며 현재 서울특별시교육청과의 제휴를 통해 잡지 배포 및 홍보를 효과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정보가 있다면?
- 저는 경영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직 운영이나 기업 경영에 관한 지식은 풍부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쇄업, 잡지업, 교육업 등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였기에 관련 도서 및 월간지를 통해 정보를 얻고 업계와 관련된 행사 및 세미나에 참석하며 정보를 얻고 네트워킹을 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창직을 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서 사회적기업진흥원 등의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었습니다.
- 어떤 인물, 어떤 기관?
- 삼성전자에서 수십 년간 개발 관련 부서에서 근무를 하시다가 퇴직을 하고 제조업으로 창업을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창업교육을 듣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 그 수십 년간의 노하우와 경험이 있으셨기에 제가 하는 방향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항상 고민이나 문제점이 생기면 같이 고민해 주는 분을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창직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 일반적인 창직자들은 사업에 관계된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법무, 세무, 노무 등의 영역의 지식은 사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미리 공부를 하거나, 비용을 아끼려고 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필히 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업자 등록 과정, 상표 등록 과정, 계약서 작성 및 세금 신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중에 발생할 위협을 줄이는 길입니다. 동시에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버는 길이기도 합니다.
- 창직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 첫째로는 사업 아이디어에 집중하기보다는 좋은 팀을 만나는 데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사업 아이디어는 트렌드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정 가능하지만 같이 일하는 파트너는 바꾸기 힘들며 기회비용도 대단히 큽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둘째로는, 아이디어로만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창직자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상품, 서비스만 있으면 저절로 돈이 벌릴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탄탄한 사업모델과 수익분석이 없이는 절대로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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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 아이디어에서 창직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면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니즈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채우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속시키는 것은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저희는 저희의 아이디어에 가장 어울리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잡지의 유가 판매도 저희의 고려 대상이었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기회의 평등이라는 아이디어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무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진로 콘텐츠와 무가지 비즈니스 모델. 두 가지 결합이 지금의 창직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 잘 몰랐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시점을 어느 시점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저희의 사업으로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변화된다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는 시장에 대해서 충분한 조사를 했지만, 실제로 겪은 사업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알았다면 우리는 사업을 시작할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적당히 몰랐지만 용감하게 실행했던 용기가 있었고, 그 덕분에 창직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인 것 같습니다.
-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사람들을 구하기는 하였지만 막상 회사처럼 능수능란하게 조직을 운영하는 부분에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의 경우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기 때문에 더욱 시간의 효율적 사용과 업무 시간 효율성 제고가 어려웠었습니다. 몇 시간을 일할 것이며 어떻게 서로 업무 공유 및 소통할 것인지 등에서 시행착오를 꽤 겪었던 것 같습니다.
-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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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는 편집팀과 운영팀으로 나누어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또 운영팀은 다시 광고, 대외협력팀과 배포담당팀으로 나누어져 조직화되었습니다.
창업멤버들의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되, 하나의 보고체계를 이루어 서로의 업무를 보고했고, 여러 업무들은 부딪히면서 배워나갔습니다.
처음 MODU 창간호를 배포할 200여개의 학교에 전화하고 방문하는 일, 광고를 위해 100개가 넘는 재단과 기업들에 일일이 전화와 방문을 했던 일. 100Page의 잡지를 처음으로 만들고 편집했던 일은 한 사람의 PM 아래 조직된 팀이 업무를 분담하는 시스템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창업멤버 모두가 학생이었기에 각자의 업무 능력과 가용시간에 따라 업무를 분담하고 PM의 책임하게 업무분담이 이루어졌던 점이 저토록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창직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창간호가 배포된 이후에 P&G에서 위스퍼를 학교에 샘플링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울시내 여고에 학생들에게 직접 제품을 전달하고 이벤트에 참여시키는 일이었는데, 더운 여름날 일일이 박스를 날라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조차 제대로 없던 사무실에 2만개가 넘는 위스퍼와 잡지를 나르며 땀을 흘렸던 일을 모두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프로모션과 이벤트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힘들었지만 학생들과 클라이언트, 그리고 MODU 모두가 만족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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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 경기복지재단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업 실비 지원과 함께 사업 멘토링, 각종 강의를 통해 유무형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부의 재원을 이용하게 되면서 여러 서류 작성 등을 실제 업무로 부딪히면서 배울 수 있었고, 재단에서 알려주는 정보들을 통해 많은 기회를 열 수 있었습니다.
- 창직 구체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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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구체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필요로 하는가를 확인하고, 그 니즈를 꾸준히 충족시킬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으로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창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기존의 사업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창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시장 조사를 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창직에 대한 답은 회의 테이블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 열린 자세와 행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연하게 시장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고, 소비자의 새로운 요구를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시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열린 자세와 새로운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바로바로 행동으로 실행할 수 있는 행동력이 창직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 창직의 장점, 매력이 있다면?
- 창직의 가장 큰 매력은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앞장선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서 시장 자체를 새로이 창출한다는 사실이 창직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또, 창직 초창기에는 시스템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아주 중요합니다. 소규모에서 시작해서 점점 기업을 키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내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창직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영국의 버진그룹을 만든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롤 모델입니다. 처음 창직을 결심하게 된 것도 이 분의 기사를 접하고 자서전과 책을 읽으면서입니다. 자신이 가장 재미있어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하여 직접 회사를 운영하면서 큰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대기업이 된 이후에도 아직까지 회사 운영 원칙과 경영 스타일은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인데 저도 꼭 실천하고 싶은 원칙입니다.
-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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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NO!’를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절대로 ‘NO!’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필요할 때에는 ‘NO!’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NO!’는 소비자의 소리, 주변 선배나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충고, 내부 회의에서의 다른 의견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NO!’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의 가장 큰 강점은 유연하고,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그 강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의견이라거나 듣기 싫은 소리라고 하더라도 ‘NO!’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그 말을 곱씹어보고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조언과 다른 의견이 쌓이고 싸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 평소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편입니다. 힘들 때는 쉬어주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혼자 여행을 간다거나 음악을 듣는 등) 감성에 빠지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성격 탓에 어떠한 일을 할 때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하고 논리나 숫자라는 정량적 부분 외에도 느낌이라는 것을 중시하곤 합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에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완전히 몰입해버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면서 사교적인 성격입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회사로 인해 사람들이 새로운 가치를 얻을 수 있고 더 재미있고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면서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큼 즐거운 삶, 성공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용기를 내십시오.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할 용기조차 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열린 자세와 적극적인 행동력으로 사업에 임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었던 일을 이왕 시작했다면 멋지게 성공하시길 MODU가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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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난독증전문가
김은희 | 한국난독증 연구소 대표
은희야, 넌 이렇게 살 애가 아니야...
제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강의실에서 공부만 하기에는 불편한 시대여서 동아리회장, 학교 대표로서 많은 활동을 하다 보니 전공에 대한 깊은 지식을 쌓을 수가 없었고 불문학 전공으로 취업을 할 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대학졸업 직후 바로 결혼해서 1남 1녀를 낳고 아파트 평수 늘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아줌마로 살아가던 그러던 어느날, 대학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모처럼 집에 놀러왔는데 계속 해서 쉬지 않고 해대는 시댁과 자식이야기, 아파트나 땅 이야기, 그러다가 왠지 우울하고 화가 많이 난다는 나의 말을 아무 말 없이 듣더니 내 손을 꼭 잡고 “은희야, 너는 이런 애가 아니야, 너는 이렇게 살 애가 아니야” 진심으로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말하는 친구를 보며 순간 부끄러움이 확 몰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니야, 이런 모습은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야, 20년 후 분명 나의 모습에 실망을 하고 우울해 질거야, 하지만 아이들이 이제 4살, 8살인데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뭘 해보려고 해도 돈도 없고....
친구를 만난 그날부터 ‘나는 누구일까? 나의 예전 모습은 어땠을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현재의 나의 모습이 내가 나이 들어서도 만족스러울까?’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기사를 보았는데 미국에는 언어치료사가 활발한데 국내에는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순간 머릿속으로 빛이 반짝이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 이거야 내가 언어에는 좀 소질이 있잖아,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대학 때 그렇게 소외계층 어쩌구 했는데 이런 소외받는 장애아들을 치료 한다면 좋겠구나 그리고 아직 이런 직업군이 없다고 하니 앞으로 전망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언어치료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그리고 난독증 전문가가 되기까지...
1994년쯤 신문기사를 통해 발달장애아치료전문가 과정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강좌를 들으면서 언어치료사도 별도로 취득하고, 평생교육원을 통해 사회복지사도 취득하고 건강가정사도 함께 취득하였습니다. 상담을 하다보니 심리학이 반드시 필요했고, 다시 평생교육원의 학점은행제 심리학과정을 등록하였습니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나의 문제의 원인에 대한 통찰을 하는 시간을 가졌고 아동과 부모의 심리에 대하여 좀 더 전문적으로 상담을 하게 되었으며 임상심리사 시험에도 합격하여 심리 전문가로서의 자신감이 커지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20여 년간 발달장애, ADHD, 학습장애 등을 치료하면서 아무리 열정을 다해 가르쳐도 좋아지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끼던 중 많은 학습부적응 학생들의 문제가 단순히 게으르고 산만하고 자기주도적이지 못하고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난독증이라는 신경생리학적인 문제로 인해 노력해도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학습부진 대책이 있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는 데도 해결이 되지 않고, 학습부적응이 학교부적응과 학업중단, 사회부적응으로 연결이 되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취약계층에 분포되어 있는 난독증 아이들을 도우려면 정책적 도움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사회전반적으로 난독증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 가장 어려워
아직 난독증에 대한 선별조사 조차도 안 되어 있어 난독증 학생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엄마들도 단지 공부를 못할 뿐인데 무슨 학습장애라고 못박는 건 아닌지 또는 이름도 생소한 난독증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관련되는 교수들에게도 질문을 했지만 이미 특수교육에서 학습장애 부분으로 하고 있었다 라든지 언어치료에서도 이미 언어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고 있는데 굳이 난독증 전문가가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고 독서치료를 하시는 분들도 자신들 영역이라고 주장하거나 교육관련 분야의 전문가들도 학습부진이나 이에 따른 학습코칭은 이미 자신들이 해오던 분야라고 주장하여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통합하고, 그에 따라 난독증 학생들을 돕기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만들고 난독증 바우처를 만들어 난독증 전문가가 일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으며 교육청별로 난독증 선별 및 심화검사를 할 수 있게 지속적으로 교사, 학부모, 담당 공무원들을 상대로 인식전환을 위한 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좀 더 체계적으로 난독증 분야를 전문화시키고 한국적 도구개발도 하기 위하여 뜻을 같이 하시는 전문가들과 함께 난독증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대학에도 난독증 치료학과 개설을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 모든 교육관련 분야에서 난독증 전문가가 일 할 수 있는 많은 장을 만들어 그들이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난독증 전문가 역시 끊임없는 공부와 애정이 필요한 직업
저의 경우는 창직에 앞서 우선 배출한 전문가들이 합법적으로 일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법률과 바우처라는 제도, 교사나 학부모의 인식전환, 교육청에서의 난독증에 대한 인식과 전수조사 및 전문가를 통한 치료방법 모색 등을 할 수 있도록 큰 틀에서 우선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현재는 난독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져 교육과학부에서 전국 8,500명 대상으로 한 난독증 선별검사를 하였고 이에 따른 전문적 심화검사와 함께 치료를 담당할 전문가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법률 제정 이후 난독증에 대한 진단도구도 많이 출시가 되고 있고 후속 연구가 뒤따르고 있어서 예전보다 쉽게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난독증 전문가가 되면 난독증이라는 제도와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관련 공무원, 전문가들, 학부모에 대한 인식전환에도 노력을 해야 됩니다. 생소한 개념이라 한 번에 안되면 수회를 반복해서라도 납득하실 수 있을 때까지 설명을 해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난독증 전문가는 언어, 두뇌신경생리학적 지식, 심리 등의 지식이 골고루 필요한 분야입니다. 전문가로 인정을 받으려면 경험과 함께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와 도와주면 극복이 가능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난독증 아동·청소년에 대한 애정과 이들을 돕기 위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저 역시 학문에 대한 끊없는 호기심과 문제를 가진 아이들을 돕기 위한 열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난독증 아동의 문제를 훗날 사회적 문제와 결부하여 이해하고 도움을 줘야 된다는 사회적 책임감이 저를 채찍질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많은 일을 해낸 데에는 결코 저 혼자 힘으로는 할 수가 없었는데 관계를 가졌던 학부모들과의 계속되는 교감과 지역사회에서 크고 작은 교육관련 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부분의 학생들의 문제와 그 원인을 찾아보는 과정들이 도움을 줬고 여기서 알게 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지지를 해주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많은 경험과 좌절이 창직의 원천
어느 날 혼자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단번에 창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는 20여 년 동안 문제를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끝없는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한 결과 난독증을 알게 되었듯이 경험과 좌절 등을 통해서 새로운 일에 대한 영감이 떠오른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창직과 확산에 있어 주변의 우호적 지원군을 많이 만들고 함께 해나가야 되며 그동안 해오던 것들의 복제가 아닌 좀 더 창의적이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개념의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구해서 더욱더 발전적인 모습으로 진화를 해야 창직이 자리를 잡고 사회에서 도움이 되는 분야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괴테가 말했습니다. ‘재능은 고독속에서 이루어지고, 인격은 세파 속에서 이루어진다’모든 일은 첫발을 내딛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암스트롱처럼 누군가는 좌절과 고독을 이겨내고 첫발을 내딛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선택하는 그 순간 이루어진다’ 라는 긍정적 마인드로 열정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개인적 성취가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찾기바랍니다.